1. 도시의 더위는 우연이 아니다 – 구조적 기후 불평등의 시작
여름철 도시에서의 더위는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다.
도시의 온도는 인위적인 설계, 공간 배치, 자재 선택, 인프라 밀도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그리고 이 더위는 사회적 계층에 따라 불균형하게 분포된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도시 열섬 현상(Urban Heat Island)이다.
열섬은 도심의 콘크리트, 아스팔트, 건물 외피 등에서
태양열이 흡수되고 저장되면서,
도시 중심의 기온이 주변보다 평균 2~7도 이상 높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문제는 이런 열섬 지역이 대체로 저소득층 주거지와 겹친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역사적 도시계획, 지가(땅값), 공공인프라 배치 등에서
기후적 특성이 고려되지 않고, 저소득층은 자연스럽게 가장 불리한 기후 조건의 공간으로 밀려났다.
즉, 더운 지역에 사는 것이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구조의 강제’라는 점에서 기후 불평등의 출발선이 된다.
2. 녹지가 없는 동네, 바람이 없는 거리 – 도시 설계의 차별
도시의 온도를 결정짓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녹지의 유무와 바람길의 확보 여부다.
하지만 저소득층 주거 지역은
이러한 요소들에서 대부분 배제되어 있다.
신도시나 고급 주거단지에서는
풍부한 나무, 중앙공원, 투수성 도로, 자연환기 구조가 계획적으로 설계된다.
반면, 노후 주택가, 반지하 밀집지, 비공식 정착지는
도심 내 남는 공간에 후순위로 개발되거나,
아예 기후 환경 고려 없이 형성된 경우가 많다.
녹지는 단지 시각적인 미관이 아니라
기온 저감, 공기 정화, 수분 증발, 그늘 제공 등
여름을 버티게 해주는 핵심 인프라다.
그늘이 하나만 있어도 체감 온도는 5도 이상 낮아질 수 있고,
나무 한 그루는 연간 250리터 이상의 물을 증발산해 도심 냉각에 기여한다.
하지만 저소득 지역에서는
도로 위에 나무 하나 없는 거리, 바람이 통하지 않는 골목이 다반사다.
이는 도시 설계가 소득과 함께 더위까지 계급화시킨 대표적 사례다.
3. 냉방이 사치가 되는 여름 – 에너지 접근의 양극화
기후 위기 속 여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찾아오지만,
그 더위를 ‘어떻게 견디느냐’는 에너지 접근성에 따라 극명하게 갈린다.
고소득층은 주택의 단열 성능이 뛰어나고,
대형 에어컨, 서큘레이터, 제습기 등 다양한 냉방 설비를 자유롭게 활용한다.
반면 저소득층은 에어컨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전기요금이 무서워 하루 2~3시간 이내로 제한적으로 사용한다.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에너지 빈곤층의 약 60%는 여름철 냉방기기 사용을 제한하고 있으며,
냉방을 충분히 하지 못하는 이유로 ‘요금 부담’을 가장 크게 꼽고 있다.
그 결과, 같은 도시에서 기온은 같아도 실내 온도는 5~7도까지 차이가 나며,
이런 차이는 곧 건강 문제, 생산성 저하, 사망률 상승으로 이어진다.
냉방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이제 냉방권(Right to Cooling)은
물, 전기, 주거권과 마찬가지로 기본 생존권의 하나로 간주되어야 한다.
4. 기후 정의는 설계와 정책으로 실현된다
기후 빈곤은 단지 가난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니다.
기후 정의(Climate Justice)는 기후 위기 속에서 누가 더 많이, 더 자주, 더 크게 피해를 입는가를 질문하는 사회적 기준이다.
그리고 이 정의를 실현하는 도구는 건축과 도시 설계, 그리고 정책적 개입이다.
1) 쿨링센터 확충: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공 냉방 공간.
도서관, 복지관, 정류장 등 폭염 쉘터 기능 강화 필요.
2) 공공녹지 우선 배치:
열섬이 심한 지역부터 도시 숲, 가로수, 그늘막 설치 우선 적용.
3) 에너지 복지 대상 확대:
소득 기준 외에도 실제 냉방 불가 지역 중심의 지원 체계 도입.
4) 기후 민감형 도시 재생:
노후 주거지 중심으로 투수성 포장, 바람길 확보, 단열 개선 등 설계 개입 추진.
기후 위기의 시대,
도시는 단지 기능적으로 작동해서는 안 된다.
살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하며, 누구도 ‘더운 곳에 살아야만 하는 이유’를 갖지 않아야 한다.
더운 지역에 사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구조의 결과다. 도시 설계와 에너지 접근의 격차가 만든 기후 불평등을 이제 바로잡아야 한다.
'기후변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어컨 없는 여름, 기후 불평등의 진짜 얼굴 (1) | 2025.06.12 |
---|---|
기후 빈곤이라는 말, 이제 피부로 느껴집니다 (1) | 2025.06.10 |
소득이 낮을수록 여름은 더 뜨겁다? 진짜 이유 (1) | 2025.06.09 |
기후 위기 앞에서 누구는 시원하고, 누구는 견뎌야 한다 (0) | 2025.06.05 |
건축가가 반드시 알아야 할 도시 기후의 진짜 위협 (0) | 2025.06.04 |
작은 물길 하나가 도시를 바꾼다? 생태 복원과 미세 기후 변화 (1) | 2025.06.02 |
도시 설계에 바람길이 필요하다고요? 이유는 이렇습니다 (2) | 2025.05.30 |
그늘 하나로 온도 5도 차이? 도시 그늘의 경제학 (0) | 2025.05.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