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35도는 모두에게 똑같은 기온일까? – 체감 온도의 불평등
기상청이 발표한 기온이 35도를 넘는 날,
뉴스는 “폭염 경보 발령”이라는 문구를 반복한다.
하지만 똑같은 기온 속에서도 사람마다 체감하는 더위는 전혀 다르다.
에어컨이 켜진 실내에서 일하는 사람과,
노상에서 일하는 환경미화원, 택배기사, 반지하에서 낮잠조차 잘 수 없는 독거노인은
같은 숫자의 기온 아래에서 전혀 다른 세계를 산다.
기후 위기가 본격화되면서 체감온도의 격차는 곧 생존격차로 이어지고 있으며,
이 격차는 계층, 소득, 주거환경, 접근 가능한 공공시설의 유무에 따라 심화되고 있다.
특히 폭염 취약계층으로 분류되는
고령자, 장애인, 아동, 저소득층의 경우,
기온보다도 그 기온을 “피할 수 있는 수단”의 유무가 생사를 결정짓는다.
35도는 단순히 더운 수치가 아니라,
누구는 참을 수 있고, 누구는 참아야만 하는 '차별의 경계선'이 되는 온도다.
2. 쿨링센터, 누구를 위한 공간인가 – 접근성의 한계
기후 대응을 위한 대표적인 대책 중 하나가 쿨링센터(Cooling Center)다.
이는 공공기관이나 사회복지시설, 도서관, 주민센터 등
폭염 시기에 개방되는 공공 냉방 공간이다.
표면적으로는 충분한 대비책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많은 사람이 쿨링센터가 있는지도 모르고,
안다 해도 이동이 어렵거나, 심리적으로 불편함을 느껴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
지적장애인, 아이를 혼자 두고 나올 수 없는 한부모,
노동시간 중 쿨링센터 이용이 불가능한 일용직 노동자 등은
쿨링센터라는 공공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다.
또한 많은 쿨링센터가 주간에만 운영되고,
운영 시간도 제한적이며, 주말과 밤에는 폐쇄된다는 점도 문제다.
결국 쿨링센터가 존재한다고 해서 모두에게 ‘접근 가능하다’고 볼 수는 없다.
‘냉방의 권리’는 단지 공간이 아니라,
시간, 정보, 이동성, 심리적 장벽을 함께 고려한 설계가 되어야만 한다.
3. 냉방이 아니라 시스템이 필요하다 – 도시 설계의 역할
기온 35도, 쿨링센터 하나로는 부족하다.
그 이유는 단순히 쿨링센터가 적어서가 아니다.
도시 자체가 ‘더위를 분산시키는 구조’로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도시 설계는
이제 단지 멋진 건축이 아니라 ‘살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문제다.
반지하, 옥탑방, 주차장, 폭염 노출 도로, 그늘 없는 정류장…
이 모든 공간은 도시 기후 적응 설계가 작동하지 않는 결과물이다.
건축가와 도시계획가는 이제 공공 쉘터, 바람길 확보, 열반사 자재 사용,
지붕 및 벽면 녹화, 그늘막 설치, 미스트 냉방 구조 등
기온을 낮추고 쿨링 없이도 열을 분산할 수 있는 물리적 시스템을
도시 전체에 분산해 설계해야 한다.
쿨링센터는 일시적 대응일 뿐,
도시의 구조 자체가 바뀌지 않으면
폭염에 취약한 사람들은 매년 더 많은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4. 누구나 시원할 수 있어야 한다 – 기후 정의의 조건
기후 변화는 자연재해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리트머스 시험지다.
폭염은 그 구조 안에서 누가 보호받고, 누가 소외되는지를 가장 빠르고 분명하게 보여준다.
‘누구는 에어컨 아래 있고,
누구는 쿨링센터에도 못 간다’는 말은
이 사회가 기후 위기를 얼마나 불평등하게 관리하고 있는지를 상징한다.
이제 기후 정의(Climate Justice)라는 개념은
추상적 구호가 아닌 구체적인 행정 기준, 도시 설계 원칙, 공공복지 확대 방향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
공공 쉘터의 배치 기준을 소득·연령·장애 여부와 연결하고,
이동 접근성·개방 시간·심리적 문턱까지 낮춰야 하며,
냉방기기 보급과 전기요금 지원도 당연히 공공복지로 확대해야 한다.
기온 35도는 '더운 날'이 아니라,
도시의 기후 인프라와 정책의 실력을 검증받는 날이다.
기후 위기 시대의 복지는
무더위를 이기는 권리를 얼마나 평등하게 보장하는가로 평가받을 것이다.
폭염 속 쿨링센터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일까? 기후 불평등은 시설의 유무가 아니라, 접근할 수 있는가로 판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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