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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도시의 열기, 누가 더 많이 감당하고 있을까?

1. 열은 평등하게 쏟아지지 않는다 – 기후 불평등의 현실
기온은 숫자로는 같아 보이지만, 사람마다 체감하는 더위는 같지 않다.
기후 불평등(Climate Inequality)은 기후 위기의 피해가 사회·경제적 지위, 주거 환경, 에너지 접근성에
따라 불균등하게 작용하는 현상이다.
그중에서도 폭염은 계층에 따라 가장 극적으로 차이가 나는 재난이다.

도시 열섬 현상(Urban Heat Island)은
고층 건물, 아스팔트, 콘크리트 구조물이 열을 저장하면서
도심의 기온이 주변보다 최대 7도 이상 높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그런데 이 열섬 효과가 주로 저소득층 주거 밀집 지역에 집중되고 있다.

옥탑방, 반지하, 노후 주택들이 밀집된 지역은
녹지, 바람길, 통풍 구조가 거의 없어,
폭염 시 실내 온도는 외부보다 더 뜨거운 경우도 많다.

고소득층은 냉방시설, 건물 단열, 차량 이동, 실내 근무 등을 통해
폭염을 피하거나 줄일 수 있지만,
저소득층은 더위에 정면으로 노출되어 버티는 삶을 강요당하고 있다.

도시의 열기, 누가 더 많이 감당하고 있을까?



2. 더위에 맞설 수 없는 사람들 – 냉방권과 에너지 빈곤
여름을 안전하게 보내기 위한 기본 조건은 냉방권(Right to Cooling)이다.
적절한 온도에서 생활할 수 있는 권리는
더 이상 사치가 아니라 생존의 기본 인권이다.

하지만 에너지 빈곤층(Energy Poor)에게 냉방은 여전히 멀다.
냉방기기를 보유하고 있어도 전기요금이 두려워 에어컨을 하루 1~2시간만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아예 에어컨 없이 선풍기와 얼음물에 의존해 더운 여름을
견디는 가정도 적지 않다.

한국에너지공단의 통계에 따르면,
에너지 빈곤층은 전체 인구의 약 8~10%에 이르며,
이 중 상당수가 폭염 경보에도 냉방기기를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노인, 장애인, 아동 등 취약 계층에게는 더욱 치명적이다.
냉방의 유무는 열사병, 탈수, 심장질환 발병률과 직결되며,
도시의 뜨거움은 가장 약한 사람들에게 먼저 닿는다.

3. 도시 구조는 누구를 보호하고 있는가 – 설계의 책임
도시의 열기는 우연이 아니라 설계된 결과다.
누구는 녹지 많은 동네에서 살고,
누구는 나무 한 그루 없는 인도 위를 걷는다.
이 격차는 바로 도시 설계와 공공 인프라 배치의 차이에서 시작된다.

도시의 고소득층 주거지에는
풍부한 그늘, 조경, 단열이 잘 된 건물, 쿨루프 지붕,
자동차 이동 인프라, 실내 중심 활동공간 등이 확보되어 있다.

반면 저소득 주거지에는
그늘이 없는 금속 벤치 정류장, 나무 한 그루 없는 도로,
통풍 안 되는 반지하, 열기 갇히는 옥탑방이 존재한다.
이 구조 속에서 도시의 열기는 차별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쿨링센터조차 거리상 가깝지만,
장애가 있거나 고령인 주민들에게는 도달이 어려운 시설이 되기도 한다.

도시는 누구를 먼저 보호할지 선택하고 있으며,
그 결과는 열지도와 소득지도가 겹쳐지는 현실 속에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

4. 가장 뜨거운 곳에서 시작해야 한다 – 기후 정의와 도시 복지
기후 위기 시대의 도시는
더 이상 ‘누구나 살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누가 먼저 고통받는가’를 묻는 공간이 되었다.

"기후 정의(Climate Justice)"는 단순한 환경운동이 아니라,
도시 설계와 정책이 가장 취약한 사람부터 보호할 수 있는 구조로 작동하는가를 따지는 기준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들은 다음과 같다:

[에너지 복지 확대]
냉방기기 보급, 전기요금 감면, 에너지 고효율 설비 우선 보급

[쿨링 인프라의 접근성 강화]
쿨링센터의 수뿐 아니라 이동성, 운영시간, 정보 접근성까지 설계 개선

[도시 기후 민감 설계 확대]
바람길 확보, 그늘 공간 확보, 폭염 우선 대응 지역 지정 및 투자 확대

[데이터 기반 정책]
열섬지도 + 소득지도 + 거주지 형태 데이터를 통합해
우선순위 기반 정책 결정

도시의 열기를 가장 많이 감당하고 있는 사람들부터
가장 먼저 시원해지는 도시를 만드는 것.
그것이 진짜 기후 정의이며,
도시가 인간 중심으로 진화하는 출발점이다.


도시의 열기는 모두에게 같지 않다. 더위는 사회 구조를 따라 흐르고, 가장 약한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닿는다. 기후 정의는 설계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