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후변화

기후 빈곤이라는 말, 이제 피부로 느껴집니다

1. 더위도 불평등하다 – 기후 불평등의 실체
기온이 모두에게 똑같이 높아진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여름을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기후 불평등(Climate Inequality)’이라는 개념은
기후 위기의 피해가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라 불균등하게 분배되는 구조적 문제를 말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폭염 시기 에너지 접근성이다.
고소득층은 에어컨, 냉방 설비, 차양 시설, 녹지 환경 등을 통해
더운 여름을 비교적 쾌적하게 견디지만,
저소득층은 냉방기기를 갖고 있지 않거나,
전기요금 부담으로 에어컨을 사용하지 못하는 '에너지 빈곤' 상태에 놓이게 된다.

한국에너지공단의 통계에 따르면,
저소득층의 냉방기기 사용률은 전체 평균 대비 약 30% 낮고,
심지어 에어컨이 있어도 1일 평균 사용시간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처럼 기후 불평등은 단순한 기분이나 환경 차이가 아니라,
삶의 질, 건강, 생명과 직결되는 생존 불평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기후 빈곤’이라는 말이 이제 체감 온도로, 피부 자극으로 다가오는 시대다.

2. 에어컨은 있지만, 틀 수 없다 – 에너지 빈곤의 여름
에너지 빈곤이란 단지 에너지 설비의 보유 여부를 의미하지 않는다.
‘필요할 때, 충분히,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기후 변화로 인한 폭염이 일상화된 요즘,
에너지 빈곤은 여름철 가장 심각한 생존 위협 요인 중 하나다.

에어컨이 집에 있어도,
한 달 전기요금 폭탄을 감당할 수 없어서 켜지 못하는 가구는 에너지 빈곤 상태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빈곤은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일상을 압박한다.
더운 방 안에서 땀을 흘리며 창문 하나 열지 못한 채,
선풍기와 얼음물에 의존해 하루를 버티는 사람들의 현실이 있다.

심지어 일부 가정은 요금 절약을 위해
밤에는 에어컨을 끄고 잠을 자거나, 낮에는 무더위를 피해 외부로 나가는 선택을 한다.
하지만 그 외부 공간조차 ‘냉방권’이 확보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구조는 결국 폭염 취약계층(노인, 장애인, 아동 등)에게
치명적인 건강 리스크로 연결되며,
더운 여름은 그저 불편한 계절이 아니라 ‘두려운 생존의 시간’이 된다.

3. 더운 동네에 사는 이유 – 도시 구조와 소득의 함수
도시의 온도는 균일하지 않다.
같은 도시, 같은 기온이라도, 동네마다 체감 온도는 극적으로 다르다.
그리고 이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도시 구조와 소득 분포다.

대표적으로, 저소득층이 밀집한 지역은 대부분 열섬 현상이 심한 지역에 속한다.
녹지가 부족하고, 좁은 골목에 밀집된 주거 형태는
햇빛을 흡수하고 복사열을 그대로 반사하면서
도심 열기를 갇히게 만든다.

게다가 이들 지역은 단열이 안 되는 오래된 건물,
환기가 되지 않는 반지하나 옥탑방 구조가 많아
여름이면 사우나 같은 실내 환경이 만들어진다.

반면 고소득층 거주지는
대체로 풍부한 녹지, 충분한 건물 간격, 투수성 포장, 바람길 확보 등 기후 적응형 요소가 설계되어 있다.
이처럼 도시의 미세 기후는 사회 계층에 따라 분리되고 있고,
폭염은 그 격차를 더욱 드러내는 계기가 된다.

도시는 누군가에게는 시원한 공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피할 수 없는 열감옥일 수 있다.

4. 기후 정의는 선택이 아니다 – 공공 정책이 필요한 이유
기후 위기가 사회 불평등을 더욱 키우고 있는 지금,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기후 정의(Climate Justice)’다.
이는 단순한 윤리적 개념이 아니라,
사회 취약계층이 기후로부터 차별받지 않도록 보호하고 설계하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정책적 개입과 도시 설계 전략이 필요하다.

냉방 공공복지 확대:
쿨링센터, 그늘막, 안개 분사 냉방 등
공공 냉방 인프라를 생활 반경 안에 설계.

에너지 복지 대상 확대:
냉방기기 지원 + 전기요금 감면 + 고효율 냉방 설비 도입 등
소득 조건을 넘어서 실제 사용 기반 확대.

기후 취약 지역 집중 설계 개입:
열섬 완화 도시 재생, 바람길 확보, 녹지 조성, 그늘 있는 거리 조성 등.

기후+사회 데이터 통합:
열섬 지도, 소득 지도, 주거 유형 데이터를 함께 분석해
정책 우선순위 대상 지역 선정 및 자원 집중.

이제는 “더운 여름을 버티는 것도 실력”이라는 말이
더는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다면 국가와 도시는
‘누구는 시원하고, 누구는 견디는’ 구조를 당연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기후 정의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기후 빈곤은 더 이상 추상적 개념이 아니다. 냉방권, 에너지 접근, 도시 설계가 삶의 온도를 결정짓는 시대가 왔다.

기후 빈곤이라는 말, 이제 피부로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