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없는 여름, 기후 불평등의 진짜 얼굴

1. 에어컨은 모두에게 있지 않다 – 에너지 접근의 격차
여름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에어컨을 켠다.
하지만 그것은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기본 조건이 아니다.
기후 위기의 시대, 폭염은 생존의 문제가 되었고,
에어컨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수단이 되었다.

그러나 저소득층, 독거노인, 반지하·옥탑방 거주자 등
사회 취약계층은 냉방기기를 소유하지 못하거나, 있어도 전기요금이 무서워 켜지 못하는 

‘에너지 빈곤(Energy Poverty)’ 상태에 놓여 있다.
한국에너지공단의 조사에 따르면, 에너지 빈곤층 중 60% 이상이 여름철 에어컨을 '하루 2시간 미만'만 사용하고 있었다.

이처럼 냉방 접근성의 격차는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실제 건강 문제와 직결되는 생존 불평등의 원인이 된다.
폭염 속에서도 냉방 없이 버티는 사람들,
그들은 '더운 여름'이 아니라 '위험한 계절'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2. 더운 동네, 더 위험한 여름 – 도시 설계와 열섬의 이중고
도시에서의 폭염은 단순히 기온 문제만이 아니다.
열이 갇히고 빠져나가지 않는 도시 구조, 불투수면, 열반사 자재, 좁은 골목 등
모든 것이 더위를 증폭시키는 환경으로 작동한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가 집중된 지역이 대체로 저소득층이 거주하는 곳이라는 점이다.
반지하, 옥탑방, 노후 주택들이 밀집된 지역은
녹지 공간과 바람길이 부족하고, 통풍과 단열 기능도 거의 없다.
이러한 주거 구조는 실내 체감 온도를 외부보다 5도 이상 높이는 원인이 된다.

실제로 서울의 한 자치구 폭염 조사에 따르면,
반지하 주거지의 여름철 평균 실내 온도는 36~38도에 달하며,
이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폭염 속에서도 냉방 없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었다.

도시의 더위는 도시 설계의 결과이며,
그 피해는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계층에게 집중된다.
‘어떤 공간에서 살아가는가’는 그 사람의 건강과 생존 가능성을 결정짓는 기후적 변수가 되어버렸다.

3. 냉방이 사치가 된 사회 – 냉방권과 기후 정의의 문제
우리는 전기요금 고지서를 받기 전까지,
냉방이 얼마나 귀한 권리인지 자각하지 못한다.

기후 변화로 인해 여름의 폭염은 예외적 재난이 아니라, 일상적 위험이 되었고,
그 속에서 ‘냉방권(Right to Cooling)’이라는 개념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냉방권은 적절한 온도에서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시민의 기본 권리를 말한다.

하지만 현실은 이 권리가 매우 불균등하게 배분되어 있다.
냉방기를 가동할 여유가 있는 사람과,
폭염 속에서 선풍기 하나에 의지해야 하는 사람 사이에는 분명한 생존 격차가 존재한다.

정부와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공 쿨링센터는 그나마 대안이 될 수 있지만,
정보 접근성, 이동 거리, 개방 시간 등 구조적 한계 때문에
정작 필요한 사람들이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냉방은 더 이상 사치가 아니다.
기후 정의(Climate Justice)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냉방 접근권, 에너지 요금 지원, 취약 지역 우선 지원 정책 등
공공복지의 재정비가 시급하다.

4. 더 이상 미루지 말아야 할 질문 – 누구는 왜 더 더운가
도시는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다.
그러나 그 더위는 모두에게 동일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시원한 실내에서 일하고,
어떤 사람은 그늘도 없는 거리 위에서 여름을 견딘다.

이 차이를 만드는 것은 단순한 운이 아니라
계층, 소득, 주거 조건, 그리고 그 사람을 위한 도시의 배려 수준이다.

기후 위기 시대, 우리는 이제 물어야 한다.
누구는 왜 더 더운가?
그들은 왜 에어컨 없이 여름을 나고 있는가?
이 구조를 그대로 두어도 괜찮은가?

이제 도시는 더위를 분산시켜야 한다.
정책은 단지 평균 기온이 아니라,
‘가장 더운 사람’을 기준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우리가 말하는 기후 적응이 진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더운 여름을 ‘버티는 사람들’의 삶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그게 바로 기후 정의의 시작이다.

폭염은 모두에게 찾아오지만, 피해는 평등하지 않다. 에어컨 없는 여름은 기후 불평등의 현실이자, 

우리가 외면해선 안 될 사회적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