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온은 같지만 체감은 다르다 – 도시 속 ‘기후 불평등’
여름의 기온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측정되지만,
그 더위를 견디는 능력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기후 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지금, 도심 속에서 ‘소득이 낮을수록 여름은 더 덥다’는 현상이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이 현상의 배경에는 바로 기후 불평등(Climate Inequality)이 존재한다.
이는 소득, 주거 형태, 에너지 접근성 등 사회경제적 요인에 따라
같은 기후 조건 속에서도 더 많은 위험과 피해를 감당해야 하는 구조를 말한다.
저소득층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은 열섬이 심한 도심 내,
녹지나 통풍 공간이 부족한 밀집 주거지인 경우가 많다.
햇볕은 직접 들어오고, 공기는 정체되어 빠지지 않는다.
반면 고소득층 거주 지역은 풍부한 나무, 잘 배치된 조경,
설계 단계부터 고려된 자연 환기 구조를 통해 동일한 기온에서도 훨씬 덜 더운 환경을 유지한다.
결국 기후 불평등은 단순히 날씨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반영이다.
도시 안에서 누가 더위에 노출되고, 누가 안전하게 보호되는가는
소득 수준이 결정하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2. 에어컨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 에너지 빈곤이 만든 온도 차이
폭염이 반복되는 여름,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은 단연 에어컨과 냉방 공간이다.
하지만 저소득층에게 **에어컨은 필수품이 아니라 '사치품'**이 되기 쉽다.
보유율 자체가 낮기도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전기요금 부담이다.
한국에너지공단의 조사에 따르면,
에너지 빈곤층 중 65%가 여름철 냉방기를 제한적으로 사용하거나 아예 사용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냉방비 부담으로 인해 에어컨을 틀지 못하거나, 틀어도 하루 2~3시간 이내로 제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에너지 접근성의 차이는 결국 건강과 생존의 격차로 이어진다.
폭염은 단지 덥다는 불편을 넘어서, 열사병, 탈수, 만성질환 악화 등 생명에 직결된 위험을 유발한다.
특히 고령자, 장애인, 아동 등은 냉방의 부족으로 더 심각한 피해를 입는다.
냉방 접근성은 이제 선택이 아닌 기본권의 문제,
즉 냉방권’(Right to Cooling)으로 다뤄져야 한다.
여름이 계속 뜨거워지는 지금, '시원할 권리’는 소득 수준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 된다.
3. 도시 구조는 왜 가난한 사람을 더 덥게 만드는가
도시 속 열기를 심화시키는 결정적 요인은 바로 도시 구조 그 자체다.
그리고 이 구조의 피해는 소득이 낮은 사람들에게 집중된다.
대표적인 예가 열섬 현상(Urban Heat Island)이다.
도로, 아스팔트, 고층 건물 등으로 둘러싸인 도심은
햇볕을 흡수한 뒤 열을 머금고 밤에도 식지 않는다.
특히 녹지가 부족하고 통풍이 잘 되지 않는 지역은
열이 갇힌 채로 축적되며, 실내 온도까지 높인다.
문제는 이런 열섬 지역이 대체로 저소득층 주거지와 겹친다는 것이다.
반지하, 옥탑방, 오래된 다세대 주택 등이 밀집된 구역은
단열 성능도 떨어지고 냉방 기기도 부족해
더위를 이중 삼중으로 체감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구조는 결국 폭염 취약 지역과 기후 취약 계층의 일치로 이어지며,
도시 내 기온 차이, 건강 피해, 경제적 손실이 복합적으로 발생한다.
이제 도시계획은 단순한 미관이나 교통 중심이 아니라,
기후 적응력과 취약 계층 보호까지 고려한 설계로 나아가야 한다.
4. 기후 정의가 필요한 이유 – 폭염 시대의 새로운 공공 책임
기후 위기는 모두에게 영향을 주지만,
그 피해는 평등하지 않다.
이것이 바로 기후 정의(Climate Justice)가 강조되는 이유다.
기후 정의란, 누구도 기후로 인해 더 큰 피해를 받지 않도록 보호받아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공공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공공 쿨링 인프라 확충:
도서관, 복지관, 주민센터, 지하철 역사 등을
쿨링센터로 지정하고 냉방 유지와 접근성 보장.
에너지 복지 확대:
냉방기기 지원, 전기요금 감면, 고효율 기기 보급 등
저소득층 맞춤형 냉방 지원 정책 필요.
폭염 취약 지역 우선 설계 개입:
그늘, 바람길, 투수성 포장, 열반사 자재 등을 활용한
기후 적응형 도시 재생 프로젝트 추진.
기후 데이터와 소득 지도를 통합한 정책 분석:
단순히 평균 기온이 아닌, 체감 온도 + 에너지 접근성 + 주거 질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지금은 ‘누구나 똑같이 덥다’는 말보다,
‘누가 더 덥고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는가’를 분석하고 보호할 시점이다.
기후 위기 시대의 도시는
‘더 시원한 곳에 살 수 있는 사람’과
‘어쩔 수 없이 더운 곳에 사는 사람’을 구분해서는 안 된다.
같은 도시에서도 소득에 따라 여름은 다르게 느껴진다. 기후 불평등은 에너지 접근권과 도시 구조로 드러나는 새로운 사회적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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