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시의 온도는 건축이 만든다 – 열섬 현상과 건축물의 책임
도시의 기온은 단순히 하늘의 햇빛 때문이 아니다.
실제로 도시 기온 상승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건축물 그 자체다.
건축가는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도시의 기후를 만드는 데 직접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현대 도시에서는 유리 커튼월, 금속 외장재, 아스팔트 포장 등 열을 잘 흡수하고 반사하는 자재들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건축 자재는 태양광을 반사시켜 주변 공기 온도를 높이고,
특히 고층 건물 외벽은 주변 보행 공간에 반사열을 집중시키는 효과를 유발한다.
더불어 건물 지붕이나 외벽에 녹화가 없는 경우,
햇빛을 흡수한 열이 그대로 축적되어 열섬 현상을 더욱 심화시킨다.
결국 도시의 기온은 주변 건축물의 재질과 배치, 외피 설계에 따라 좌우되며,
도시 전체의 열 환경은 건축계의 손끝에서 형성되고 있다.
이제 건축가는 단순히 미적 조형이나 공간 구성만 고민할 것이 아니라,
도시 기후 자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기후 설계자로서의 책임을 자각해야 한다.
2. 도시에는 바람이 막혔다 – 공기 흐름과 배치의 실패
도시 기후 위협의 두 번째 축은 바람이 흐르지 않는 구조에 있다.
건축물 배치와 도심 밀도의 증가는 도시 내 자연 바람길을 차단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공기 흐름이 정체되어 열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오염물질이 축적되는 현상이 심화되었다.
건축 설계에서 건물 간 간격, 배치 방향, 통풍 축을 고려하지 않는 경우,
인위적인 벽면이 만들어지며 바람의 흐름을 왜곡한다.
특히 고층 건물들이 일렬로 배치될 경우,
건물 사이에서 발생하는 '와류 효과'와 '터널형 돌풍'은
도시 바람의 자연스러운 순환을 방해하고 보행자의 쾌적성도 떨어뜨린다.
건축가가 고려해야 할 것은 단순히 '풍향'이 아니다.
어떤 공기가 도시로 유입되고, 어떻게 순환하며, 어디서 빠져나가는지에 대한
도시적 스케일의 환기 전략이 필요하다.
이제는 단지 한 건물의 통풍이 아닌,
도시 전체의 공기 흐름을 고려한 건축의 설계 철학이 요구된다.
바람이 통하지 않는 도시는 식지 않는다. 그리고 식지 않는 도시는 죽어간다.
3. 물이 빠지지 않는 도시 – 불투수면과 침수 리스크
기후 변화는 예측할 수 없는 폭우를 일상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도시는 점점 물을 흘려보내지 못하는 구조로 변했다.
그 이유는 바로 건축과 도시 설계에서 '불투수면'이 과도하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건물의 옥상, 주차장, 인도, 광장 등 대부분은 콘크리트, 석재, 아스팔트로 덮여 있으며,
이로 인해 빗물이 땅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표면 위를 흘러가면서
단시간 내 폭우가 침수와 하천 범람을 유발하게 된다.
건축가는 이러한 현실을 인식하고,
투수성 포장재, 녹화 지붕, 빗물 저장 시설, 레벨 조절 배수 구조 등
다양한 도시형 저영향 개발(LID: Low Impact Development) 기법을 설계에 반영해야 한다.
도시의 물순환은 이제 건축 설계의 일부가 되어야 하며,
특히 지하 주차장, 저지대 건물, 고밀도 단지의 경우 강우 시 대응력을 확보한 계획이 필수다.
물이 스며들지 않는 도시는 결국 침수로 응징당한다.
기후 변화 시대의 건축가는 단순한 공간 조율자가 아닌,
물의 흐름을 설계하는 ‘수리적 사고’의 실무자여야 한다.
4. 건축은 기후를 선택할 수 있다 – 기후 감응형 설계 전략
이제 건축가는 단지 공간을 채우는 기술자가 아니라
기후 변화에 대응하고 도시를 회복시키는 프로그래머가 되어야 한다.
건축은 충분히 기후에 반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남향 배치, 채광 조절 장치, 이중 외피 구조, 태양광 차단 루버 등은
별도의 에너지를 쓰지 않으면서도 실내의 열 획득과 차단을 제어할 수 있다.
이는 패시브 디자인의 핵심 개념으로,
기후 데이터를 분석하여 물리적으로 환경에 적응하는 설계 전략이다.
또한 건축 재료 자체도 기후 대응형으로 진화하고 있다.
고반사 지붕재, 친수성 외장재, 기후감응형 유리 등은
기온, 습도, 자외선에 따라 물성을 변화시켜 자동으로 열 환경을 조절한다.
이처럼 건축은 도시 기후의 피해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해결책이자 대응 주체가 될 수 있다.
도시의 기후 위협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지만,
건축가가 기후를 설계하는 능력을 갖춘다면
도시는 다시 숨 쉴 수 있게 될 것이다.
건축은 더 이상 중립적이지 않다. 건축가는 도시 기후의 원인일 수도, 해결책일 수도 있다. 기후 위협 시대, 건축의 책임은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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