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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도시엔 비가 흘러가지 않는다? 물순환 단절의 충격적인 결과

1. 도시는 물을 흡수하지 않는다 – 불투수면의 급증
도시에서 비가 오면 물이 땅으로 스며들어야 한다는 것은 자연의 상식이다.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도시는 더 이상 물을 흡수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불투수면의 과도한 확장 때문이다.
불투수면이란 비가 스며들지 않고 표면을 따라 흐르거나 정체되는 지표를 의미하며,
대표적으로 아스팔트 도로, 콘크리트 보도, 주차장, 건축물 지붕 등이 해당된다.

도심은 인구 밀도와 교통 효율을 높이기 위해 광범위하게 포장재를 사용해 왔고,
그 결과,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 틈이 거의 사라졌다.
서울의 경우, 시내 주요 구역의 불투수율은 최대 85% 이상에 이른다.
즉, 비의 대부분이 흡수되지 못하고 도로 위를 떠돌며 배수구로만 흘러가는 구조가 된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단순히 배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자연적인 물순환 과정에서 빗물의 침투 → 지하수 함양 → 하천 보충 → 증발산이라는 순환 고리가 끊어지면서
도시는 점점 건조하고 열을 품는 체질로 변화한다.
이것이 도시의 기온 상승, 수자원 고갈, 폭우 피해 확대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된다.

2. 하천은 메마르고, 지하수는 사라진다 – 수문학적 단절
비가 흘러들지 않으면 도시의 하천과 지하수 시스템 전체가 붕괴된다.
예전에는 비가 오면 흙과 식생을 통과하며 지하로 천천히 스며들어,
지하수를 채우고, 수개월 후에는 하천을 다시 보충하는 자연스러운 사이클이 유지되었다.

그러나 도시화된 지역에서는 이 흐름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빗물은 빠르게 배수되어 하수관을 타고 강으로 흘러가고,
그 과정에서 지하수 함양이 전혀 일어나지 않으며, 하천은 건기에도 건조해진다.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는 인공 수로를 설치해 강과 하천에 물을 공급하지만,
이 또한 수돗물, 정화수, 댐 방류수 등에 의존하는 불안정한 방식이다.
자연이 주는 물이 아닌, 인위적 순환에 의존하는 시스템은 에너지 소비도 크고 지속가능성도 낮다.

더욱이 지하수 부족은 도시 내 침하 현상을 가속화하며,
장기적으로는 건물 기초, 도로 구조물의 안정성에도 영향을 준다.
물순환의 단절은 단지 물의 문제를 넘어서,
도시 생태와 인프라 전체에 타격을 주는 시스템적 리스크로 확대된다.

3. 빗물은 도시 재해를 부른다 – 침수, 역류, 도시형 홍수
도시에서 빗물이 스며들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모든 빗물이 ‘한꺼번에 쏟아져 배출’된다는 것과 같다.
이는 도시 홍수, 침수, 하수관 역류, 저지대 피해 등
도시형 기상재해의 근본 원인이 된다.

불투수면 위로 쏟아진 폭우는 흘러갈 곳이 없기 때문에
도로를 급속히 덮치고, 배수 용량을 초과하면 하수관이 역류하며,
저지대 지하주차장이나 반지하 주거지로 물폭탄처럼 유입된다.

2022년 서울 강남역 일대 침수 사태는
시간당 110mm의 비가 1시간 넘게 쏟아지며
배수 용량을 초과한 대표적인 도시형 재해였다.
이 지역은 불투수면 비율이 90%를 넘는 대표적인 지역으로,
자연 흡수가 거의 불가능한 구조였다.

또한, 이러한 급격한 유출은
하천이나 하수관의 오염물질을 급격히 씻어내 하류로 흘려보내고,
이는 수질 오염, 해양 생태계 파괴로 이어지는 환경적 2차 피해를 야기한다.
빗물을 흘리지 못하는 도시는 결국 자연과 사람 모두를 위협하는 재난 구조를 가진다.

4. 답은 스며들게 하는 도시 – 투수성과 물순환형 도시의 미래
도시는 더 이상 물을 밀어내는 구조로 설계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스며들게 만드는 도시’, 즉 물순환형 도시(WSUD: Water Sensitive Urban Design)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 개념은 도시 내 빗물이 지하로 스며들고, 증산되고, 순환되도록 설계하는 접근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투수성 포장 재료의 확대다.
투수블록, 투수 아스팔트, 녹지형 인도는
빗물을 지표면 아래로 스며들게 해 지하수 함양과 도시 냉각 효과를 유도한다.
실제로 투수율이 높은 지역은 열섬현상이 완화되고, 침수 피해도 적다.

다음으로는 녹지공간과 수공간의 전략적 배치다.
공원, 옥상녹화, 빗물정원, 빗물저류지 등을 통해
비가 오는 즉시 빗물을 받아들이고 천천히 배출하는 도시의 ‘스펀지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

또한, 기존의 하수 관거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
자연형 유출경로(예: 친수형 도로, 생태하천)를 만드는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이는 빗물의 흐름을 관리하면서도 생태적, 미관적, 기후적 이점까지 얻는 방식이다.

물순환 단절은 도시가 만든 문제지만,
그 해법 역시 도시 설계와 정책에 달려 있다.
물이 흘러야 도시도 숨 쉴 수 있다.

도시는 물을 흘려보내지 않는다. 불투수면이 만든 물순환 단절은 기후위기와 재난을 부르고, 해법은 스며드는 도시 설계에 있다.

도시엔 비가 흘러가지 않는다? 물순환 단절의 충격적인 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