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낮보다 더운 밤의 원인
아스팔트는 단순한 도로 포장재가 아니다. 그것은 도심의 폭염을 만드는 가장 대표적인 열 저장소다. 많은 사람이 무심코 지나치는 아스팔트는 낮 동안 태양열을 흡수하고, 밤에는 그 열을 서서히 방출하면서 도시의 기온을 유지하거나 더 높인다. 그래서 해가 진 밤에도 도시의 열기는 좀처럼 식지 않는다.
도시 열섬(Urban Heat Island) 현상은 이러한 아스팔트의 특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아스팔트는 햇빛을 거의 95% 이상 흡수하는 매우 낮은 반사율(albedo)을 가지고 있다. 이 말은 곧 도시 한복판에 넓게 깔린 검은 도로와 주차장, 광장 등이 하루 종일 열을 모은 뒤, 그 열을 주변 환경으로 되돌려준다는 것이다.
더욱이 아스팔트는 열전도율이 높아 표면뿐 아니라 내부까지 뜨거워진다. 7월 중순 한낮, 아스팔트 표면의 온도는 기온보다 20도 이상 높게 측정되며, 60도 이상에 도달하기도 한다. 여기에 차량의 배기열, 도시의 에어컨 실외기 열기까지 겹치면 도심 속 보도는 ‘찜질방’처럼 변한다.
문제는 이러한 열이 밤에도 식지 않는다는 데 있다. 시골 지역은 흙과 식생 덕분에 열을 빠르게 잃지만, 도시는 아스팔트 덕분에 밤이 되면 ‘열대야’가 일상처럼 반복된다. 아스팔트는 도시를 불덩이로 만드는 데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2. 도시 구조 속 아스팔트의 비중
도시 폭염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다 보면 아스팔트의 비중이 생각보다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도심 면적의 30% 이상이 아스팔트로 덮여 있으며, 도로 외에도 주차장, 광장, 골목길, 건설 현장까지 다양한 공간에 이 자재가 사용되고 있다.
아스팔트는 그 자체로 열을 품고 있지만, 더 큰 문제는 도시의 바람길을 막고, 열 배출을 방해한다는 점이다. 아스팔트는 대부분이 지면에 넓고 평평하게 깔려 있으며, 물이 스며들지 않는 ‘불투수면’이다. 이로 인해 도시 내 강수의 자연 순환도 방해받고, 땅이 식을 기회조차 박탈당한다.
또한, 아스팔트로 덮인 지역은 주변 녹지보다 체감 온도가 3~5도 이상 높다. 그늘이 없고 반사광이 강하며, 햇빛을 직접 흡수한 도로는 사람의 발밑에서부터 열을 끌어올린다. 어린이, 노약자, 반려동물에게는 치명적인 온도 환경이다.
건물 사이사이마다 설치된 아스팔트 기반의 주차장도 문제다. 이들은 좁고 폐쇄된 공간에 열을 가두는 역할을 한다. 이렇듯 도시 내 아스팔트는 온도 상승을 주도하면서도,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숨은 주범'으로 기능하고 있다.
3. 온도 측정으로 확인된 충격
아스팔트가 실제로 도시 폭염을 유발한다는 사실은 데이터로도 증명된다. 환경부 및 국내 여러 지자체가 발표한 여름철 표면 온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스팔트 도로의 평균 표면 온도는 55~65도 사이에 달한다. 일부 오후 시간에는 70도에 근접하는 경우도 확인되었다.
이는 시골의 흙길이나 잔디밭의 평균 표면 온도(약 32~37도)와 비교하면 두 배 가까운 차이다. 즉, 동일한 날씨 조건에서도 아스팔트는 스스로 더위를 만들어내는 구조를 갖고 있다.
게다가 아스팔트는 시간에 따라 기온에 미치는 영향도 다르다. 낮에는 열을 흡수하고, 해가 지고 나면 서서히 열을 방출하여 주변 온도를 계속 높이는 열 저장 기능을 수행한다. 이 때문에 아스팔트가 많은 도심은 밤이 되어도 시원해지지 않고, 냉방기 사용이 증가하며, 전력 피크와 온실가스 배출도 따라 증가하게 된다.
따라서 아스팔트를 단순한 '도로 재료'로만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 도시 기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하나로서, 도시계획과 기후정책에서 핵심 관리 대상이 되어야 한다.
4. 해결을 위한 도시 설계의 방향
도시 폭염을 줄이기 위한 방법은 단지 기후 변화에 적응하는 것을 넘어, 도시 자체를 다시 설계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아스팔트를 줄이고, 대체할 수 있는 소재와 구조를 도시 전체에 적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첫째, 고반사율 포장재(쿨페이브먼트)를 활용해야 한다. 기존 아스팔트 대신 태양빛을 반사하는 밝은 색상의 재료를 사용하면, 표면 온도를 10도 이상 낮출 수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시는 ‘쿨 페이브먼트 정책’을 통해 모든 공공 도로의 색을 밝은 회색으로 바꾸고 있다.
둘째, 투수성 포장재 도입이 필요하다. 물이 스며드는 바닥 재료는 열 저장을 줄이고, 빗물의 순환도 가능하게 해 도시 열기와 홍수를 동시에 줄일 수 있다.
셋째, 도시 내 녹지 면적을 확대하고, 아스팔트를 대체하는 그린인프라를 설치해야 한다. 나무를 심고, 벽면 녹화와 옥상 정원을 활용하면 도시 전체의 기온을 안정적으로 낮출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아스팔트 열지도를 기반으로 한 지역별 우선 대응 정책이 필요하다. 폭염에 가장 취약한 구역부터 순차적으로 재설계해, 불균형한 더위의 분포를 개선할 수 있다.
아스팔트는 도시의 ‘기본’이라 여겨져 왔지만, 이제는 기후위기의 변수로 바라봐야 할 때다.
불을 품은 길 위에서 우리가 살아가야 한다면, 도시 설계는 더는 그대로일 수 없다.
아스팔트는 도시 폭염의 숨은 주범이다. 열을 흡수하고 방출하는 구조로 도시 기온을 높이며, 대체 포장과 재설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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