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엔진의 열이 도시를 데운다 – 자동차 배출열의 실체
많은 사람들은 여름철 도심이 더운 이유를 햇볕이나 열섬 현상 정도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자동차가 배출하는 열 그 자체도 도심 온도를 상승시키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도시에는 수많은 자동차가 밀집되어 있고, 이 차량들이 이동하며 내뿜는 열은 단순한 미세 수준이 아니다.
특히 도심에서 정체된 차량 행렬은 마치 ‘이동식 열 발생기’가 줄지어 있는 것과 같다.
자동차는 주행 중 연료를 연소시키며 엔진에서 열을 발생시키고,
이 열은 대부분 차량 내부가 아닌 외부로 배출된다.
엔진열, 배기열, 타이어 마찰열, 브레이크 열 등이 도로 위로 방출되고,
이는 아스팔트 지면과 공기 중에 축적되어 도심의 국지적 온도를 끌어올린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서울 강남대로의 교통 혼잡 시간대에는 평균 기온이 인근 녹지 지역보다 2.4도 높게 나타났고,
이는 주변 도로의 차량 배출열이 기온에 영향을 준 결과로 해석된다.
즉, 차가 많은 지역은 실제로 ‘더 덥다’는 것이다.
2. 정체된 도로, 멈춘 바람 – 교통량이 바람길을 차단한다
도시는 자연적으로 공기가 순환하면서 열을 분산시킨다.
하지만 자동차가 많고 교통이 정체되는 지역에서는 공기의 흐름이 멈추는 ‘대기 정체’ 현상이 발생한다.
도심 도로가 교통량으로 가득 차면, 열뿐 아니라 공기의 흐름 자체가 물리적으로 차단되며
열이 한 지역에 고여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고층 건물 사이에 만들어진 ‘바람길’도 차량 정체와 높은 교통 밀집도로 인해 효과가 떨어지며,
공기 중의 오염물질과 열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정체된다.
이로 인해 도로 주변의 미세먼지 농도와 체감 온도가 함께 상승하는 결과를 낳는다.
예컨대, 여름철 출퇴근 시간대 대도시의 주요 간선도로에서는
도로 상공에 형성된 ‘열 기둥(heat column)’ 현상이 관측되기도 한다.
이는 차가 만든 열과 정체된 공기가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저층 대기권에 눌려 머무는 기후적 특수 현상이다.
즉, 교통량이 많을수록 단순히 더워지는 것을 넘어 도시의 공기 순환 자체를 방해하며,
열섬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3. 배기가스는 온도도 올린다 – CO₂와 대기열의 상관관계
자동차는 열만 내뿜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뿜어내는 이산화탄소(CO₂), 질소산화물(NOx), 미세먼지(PM2.5) 같은 배기가스는
직접적으로 도시의 기온에 영향을 준다.
특히 이산화탄소는 온실가스로서, 도심의 열복사를 가두는 '열 덮개 효과’를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과학적으로 이 현상은 **복사열 재방출 지연(radiative forcing)**이라고 불린다.
배출된 온실가스는 대기 중에서 태양열이 지표에서 반사되어 우주로 빠져나가는 과정을 지연시키며,
그 결과 열이 도시 내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나게 된다.
또한 차량이 정체된 상태에서는 연료 연소 효율이 떨어지면서
더 많은 배기가스를 배출하게 되고, 이로 인해 도시 상공의 온실가스 밀도도 높아진다.
이 밀도는 낮에는 열을 축적하고, 밤에는 열이 빠져나가는 것을 방해해
야간 기온을 높이고 열대야를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
결국, 차량이 많다는 것은 단지 혼잡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를 더운 상태로 오래 유지시키는 '열 덮개'를 두껍게 만드는 것과 같다.
4. 해결책은 자동차가 아니다 – 도시 구조의 전환이 필요하다
많은 도시가 열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녹지 조성이나 쿨루프 도입 같은 기술을 도입하고 있지만,
교통 시스템의 전환 없이는 근본적 해결이 어렵다.
왜냐하면 교통량은 단순히 사람의 이동을 위한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 열 구조에 영향을 주는 열 발생 요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시 설계 단계에서부터 자동차 중심 구조를 줄이고, 보행·자전거·대중교통 중심 도시로의 전환이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 파리와 독일 프라이부르크는
도심 차량 진입을 제한하고, 주요 도로를 그린로드와 트램 중심으로 재편함으로써
여름철 평균 기온을 1.5도 이상 낮추는 효과를 얻었다.
또한 서울시 일부 자치구에서는 차 없는 거리 시범 사업을 통해
교통량 감소가 도심 온도 저감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실측 결과도 나왔다.
즉, 도심에서 차량을 줄이는 것은 열을 줄이는 효과적인 기후 대응 전략이 될 수 있다.
결국 교통량은 더운 도시를 만드는 직접적 원인이다.
앞으로의 도시계획은 ‘이동의 편리함’뿐만 아니라
‘열의 최소화’, ‘기온 조절’이라는 차원의 설계 철학이 함께 적용되어야 한다.
차가 많을수록 도시는 더 더워진다. 자동차는 열을 내뿜고 바람을 막으며, 도시의 열을 가두는 기후 시스템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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