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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도시에도 ‘폭염 시즌’이 생겼다? 도시형 열파의 실체

1. 여름이 아니라 ‘폭염 시즌’ – 달라진 도심 기후의 현실
예전에는 여름이면 더운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더위의 양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단순히 기온이 높은 수준을 넘어, 특정 기간 동안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폭염이 반복되는 '열파(heat wave)' 현상이 도시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제는 단순한 ‘더위’가 아니라, 도심을 마비시키는 폭염 시즌이 고착화되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서울의 평균 폭염 일수는 2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는 기온이 35도를 넘는 날이 연속으로 나타나며,
이 시기에는 아침, 저녁으로도 실외활동이 힘들 정도다.
이는 단순히 기후 변화 때문만이 아니라, 도시 구조가 만들어낸 기후 증폭 효과 때문이다.

도시는 광범위한 콘크리트 구조물, 아스팔트 도로, 높은 건물 밀집으로 인해
태양열을 흡수하고 열을 저장하는 특성을 가진다.
이 열은 낮에 축적되었다가 밤에도 방출되지 않아,
밤까지 지속되는 고온 상태가 열파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이다.

즉, 도시에서는 여름이 아닌 “폭염 시즌”이라는 새로운 기후 패턴이 생겨났고,
이는 사람들의 건강과 도시 시스템 전반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다.

2. 도시형 열파는 다르다 – 열섬 현상이 만드는 이례적 고온
일반적인 폭염은 기압과 대기의 순환에 따라 넓은 지역에 걸쳐 발생하지만,
도시형 열파(Urban Heat Wave)는 도시의 구조와 열섬 현상이 결합되어 국지적으로 고온을 지속하는 특수한 형태를 띤다.
이는 동일한 기상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도시 지역만 더 극단적인 고온에 노출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도시형 열파의 핵심은 바로 열섬 현상(urban heat island)이다.
이는 도시의 건물과 도로가 태양열을 흡수하고, 밤에도 이를 방출하면서
지속적인 온도 상승을 유발하는 구조적 기후 현상이다.
열섬이 강하게 발생한 지역은 야간 기온이 외곽 지역보다 2~5도 높게 유지되며,
그로 인해 열대야 발생 빈도도 급증하게 된다.

예를 들어, 같은 서울이라도 한강 근처와 강남 도심 지역의 야간 기온 차이는
폭염 시기 기준으로 최대 3.7도까지 벌어진다는 실측 결과가 있다.
이는 열섬이 만들어낸 국지적 열파의 대표적인 사례로,
실제로는 같은 도시 안에서조차 ‘기온 격차’가 생기는 도시 내부 기후 분열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3. 아스팔트, 고층 건물, 차량 – 도시형 열파를 키우는 구조
도시형 열파가 발생하는 이유는 기후 변화뿐 아니라,
도시 자체가 열을 머금고, 증폭시키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원인은 불투수면(물이 스며들지 않는 지표면)의 과도한 비율이다.
도로, 주차장, 보도블록 등은 태양열을 그대로 흡수하며,
수분이 증발하지 않기 때문에 냉각 작용이 거의 없다.

또한 고층 건물 밀집 지역은 공기 순환을 막고 바람길을 차단해
열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한다.
이로 인해 도심 내부에는 '열의 고임 현상'이 발생하고,
이는 곧 열파의 강도를 증가시키는 직접적인 요인이 된다.

여기에 더해지는 것이 차량의 배출열과 엔진 열이다.
출퇴근 시간 정체된 도로에서는 수백 대의 자동차가 도로 위에서 열을 내뿜으며,
아스팔트와 맞닿은 공간의 온도를 급격히 상승시킨다.
이 열은 바로 상공의 공기를 가열하며, 도시 전체의 체감 기온을 밀어 올리는 역할을 한다.

결국 도시의 구조적 특성들이 폭염을 만들고, 가두고, 증폭시키는 3중 구조를 형성하면서
일반적인 더위가 아닌 고립된 고온의 덫, 즉 도시형 열파가 고착화되는 것이다.

4. 폭염을 넘어서려면 – 도시형 열파를 막는 설계적 해법
도시형 열파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나무를 심거나, 그늘막을 늘리는 방식만으로는 부족하다.
도시 전체를 '열에 반응할 수 있는 구조'로 바꾸는 기후 적응형 설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우선 고려해야 할 것이 바람길 확보와 투수성 재료의 확대다.

건물 배치 시 도심을 가로지르는 바람길(wind corridor)을 설계하면
열 축적이 분산되고 공기의 흐름이 회복될 수 있다.
또한 기존의 불투수 포장 대신 투수성 아스팔트, 녹지형 보도, 물순환형 도시 구조를 도입하면
지표 온도를 낮추고 수분 순환을 통해 도시 전체의 냉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쿨루프(Cool Roof), 쿨월(Cool Wall) 같은 고반사 건축자재의 도입도 중요하다.
이 자재들은 태양 복사열을 반사시켜 건물 자체가 열을 축적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전체 도시 열 환경을 바꾸는 데 효과적이다.

해외에서는 도시 열파에 대응하는 법제화도 활발하다.
프랑스 파리는 2025년까지 모든 공공건물에 쿨루프 도입을 의무화했고,
미국 뉴욕시는 ‘도시 열 위험 지수’를 공개해 열파 취약 구역을 집중 관리하고 있다.

이처럼 도시형 열파는 구조적 문제인 만큼,
도시 설계 단계에서부터 폭염을 예측하고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하다.

 
도시에는 더 이상 단순한 여름이 없다. 구조적 열섬이 만든 '폭염 시즌'은 도심을 덮치는 열파로 진화했고, 설계가 해답이다

도시에도 ‘폭염 시즌’이 생겼다? 도시형 열파의 실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