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시의 지하 개발이 만들어낸 ‘지열 축적’의 문제
도시 개발이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것뿐 아니라, 땅속으로도 깊이 파고들고 있다. 대형 지하철망, 지하 쇼핑몰, 지하주차장 등 지하공간의 확장은 도시 편의성 향상에 큰 기여를 해왔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지하 개발이 도시의 기온을 높이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는 사실은 아직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지하 개발이 기온 상승에 미치는 주요 원인은 지열 축적(ground heat accumulation)이다. 지하 구조물은 콘크리트, 철근 등 열을 저장하는 물질로 만들어지며, 외부와 완전히 단열되어 열이 빠져나가지 않는다. 지하에서 발생하는 조명, 기계 환기, 전기 설비 등에서 나오는 인공 열이 빠져나가지 않고 내부에 축적되고, 이 열은 도심 지표면으로 역류하거나, 지표 근처의 기온을 간접적으로 상승시키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특히 여름철에는 태양열뿐 아니라, 지하 구조물 내의 축열이 겹쳐져서 지상 온도를 실질적으로 끌어올리는 ‘이중 열원’이 된다. 서울의 경우, 지하공간 면적이 2020년 기준으로 전체 도시 면적의 12%를 차지했으며, 이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도시의 밑바닥이 뜨거워지는 현상은 이제 이론이 아닌 현실이다.
2. 땅속 열이 지표면을 덥힌다 – 지하 공간과 열섬 현상의 연관성
열섬 현상은 도시 내부 온도가 주변보다 높아지는 현상으로, 일반적으로 아스팔트, 건물 재질, 녹지 부족 등 지표면의 특성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서는 지하 공간에서 발생하는 열 축적과 방출 역시 열섬 현상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지하철 역사는 특히 높은 온도를 유지한다. 실제 서울 2호선 지하철 플랫폼은 여름철 평균 온도가 30도 이상을 기록하며, 환기 시스템이 있어도 열이 완전히 배출되지 않는다. 이 내부 열이 환기구나 출입구를 통해 지상으로 방출되면서, 주변 지상의 온도를 높이는 역할을 하게 된다. 또한 지하 구조물이 밀집된 지역은 지표면 아래 온도 상승 → 지표면 온도 전달이라는 순환 구조로 인해 열이 빠져나가지 않고 정체되기 쉽다.
한 연구에 따르면, 지하공간이 집중된 도심 지역의 표면 온도는 주변보다 평균 1.2도 이상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는 단순히 바닥이 뜨겁기 때문이 아니라, 지하에 쌓인 열이 지속적으로 복사되며 도시 전체의 기온을 유지시키기 때문이다. 즉, 지하 개발이 열섬을 가속화하는 ‘숨은 동조자’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3. 지하 구조물의 환기·단열 설계 실패가 만든 역효과
지하 공간은 일반적으로 환기가 잘 되지 않는 밀폐 구조다. 이 때문에 열, 습기, 인공조명에서 발생하는 에너지가 외부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구조물 내부와 주변을 점점 더 뜨겁게 만든다. 특히 지하 주차장이나 대형 몰 같은 곳에서는 조명, 전기실, 엘리베이터 구동장치에서 상시적으로 열이 발생한다. 이 열은 제대로 배출되지 못하면 벽체와 지반에 스며들어, 지하 전체를 '열 저장고'처럼 변화시킨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단열 설계와 환기 시스템의 부실이다. 초기 건설 단계에서 비용 절감을 위해 지하 공간의 열 방출을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이는 구조물 자체에 열이 누적되는 구조적 결함을 만든다. 시간이 지나면 누적된 열이 주변 토양과 건물에 영향을 주고, 이 열기는 결국 지표면까지 전달된다.
서울시 도시환경센터의 분석에 따르면, 지하 주차장과 지하철 역사 인근의 지표 온도는 하루 평균 1.5~2도 더 높다. 또한 여름철에는 내부 온도가 35도 이상까지 오르는 사례도 많다. 문제는 이러한 열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24시간 내내 유지되는 지속 열원이라는 점이다. 즉, 지하 구조물은 낮에도 덥고 밤에도 식지 않으며, 도시 전체의 열 순환을 방해하는 주요 요소가 된다.
4. 해법은 ‘땅속까지 고려하는 도시 설계’에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하 개발을 단순한 공간 확장으로 보지 않고, 도시 기후에 영향을 미치는 열원으로 인식하는 정책적 전환이 필요하다. 우선, 지하 구조물 설계 시 열 차단 재료와 고성능 단열재 사용을 의무화해야 하며, 인공 열이 내부에 갇히지 않도록 자연 환기 시스템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
또한, 지하 공간과 지상 공간 사이의 열 교환을 막기 위한 지중 완충지대(Ground Buffer Zone) 개념이 도입되어야 한다. 이는 지하에서 발생한 열이 지표면으로 직접 전달되는 것을 차단하고, 열을 외부로 분산시키는 생태 기반 설계다.
예를 들어, 지하 공간 위에 수목이 있는 녹지공간을 배치하거나, 지상에서 흡열 기능을 하는 자연형 재질(투수성 포장재 등)을 사용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일본 도쿄는 대형 지하개발이 예정된 지역에 대해 ‘지열 관리 계획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하고 있으며, 도쿄 도청사는 지하 구조물의 열 방출을 최소화하기 위한 ‘열 순환 모델’을 도입했다. 우리나라 역시, 지하 인프라의 기후 영향도를 평가하는 기준을 만들고, 건설사나 지자체가 열섬에 기여하지 않도록 관리감독 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결국 땅속 구조물도 도시의 기후 시스템 안에 포함된다는 인식이 중요하다. 우리가 지표 위만 바라보는 도시계획에서 벗어나, ‘땅속까지 설계하는 도시’로 전환해야 진짜 스마트시티가 될 수 있다.
지하 개발은 열섬 현상의 숨은 원인이다. 지하 구조물의 열 축적과 방출은 도시 기온을 높이며, 열 차단과 환기 설계가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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