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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왜 고층 아파트 옆은 늘 더울까? 바람길이 막히는 도시의 비밀

1. 바람이 끊긴 도시 – 고층 건물이 만드는 '무풍지대'
고층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도시의 바람길이 막히고 있다. 바람은 도시 전체의 공기를 순환시키고, 열기와 오염 물질을 외부로 배출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수십 층 규모의 아파트가 밀집되면서 이러한 자연의 흐름은 심각하게 방해받고 있다. 특히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의 거리가 좁고, 배치 방향이 일정한 경우, 바람이 아예 통하지 않는 **‘무풍지대’**가 생긴다. 이 현상은 단순한 체감 불쾌감을 넘어, 열섬 현상과 미세먼지 정체를 야기하며 건강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서울의 송파구 잠실 일대는 30층 이상 고층 아파트 단지가 밀집된 대표적 지역이다. 이곳의 여름 체감 기온은 서울 평균보다 2~3도 높게 측정되는 경우가 많으며, 공기 정체로 인해 미세먼지 농도도 늘어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단지 내 바람길이 거의 형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립환경과학원은 “도시 내 고층 건물 배치가 바람의 흐름을 차단하여 도시 기온 상승을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왜 고층 아파트 옆은 늘 더울까? 바람길이 막히는 도시의 비밀


2. 바람길의 원리 – 도시에는 공기의 통로가 필요하다
도시 기후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바람이 흘러갈 수 있는 공기의 통로, 즉 바람길이 반드시 필요하다. 바람길은 산, 하천, 공원 등 자연지형을 통해 형성되며, 인공 구조물과의 관계에 따라 공기의 흐름이 강화되거나 차단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도시 개발은 이러한 바람길을 고려하지 않고 수익성 중심의 고층 건물 설계에 치중하고 있다. 이로 인해 자연의 공기 흐름을 차단하고 열과 오염물질이 머무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도시 바람길의 개념은 이미 일본, 독일, 싱가포르 등에서 적극적으로 반영되고 있다. 독일 프라이부르크는 도시 개발 계획 단계에서부터 바람의 흐름을 분석하여 건물의 높이, 배치, 간격을 정한다. 반면, 한국의 많은 도시는 이러한 기후 요소보다 용적률, 부동산 수익, 주거 밀도 등을 우선하며, 결과적으로 바람이 막히는 ‘닫힌 도시’가 되어가고 있다.

특히 서울처럼 동서 방향으로 바람이 흐르는 지역에서는, 남북으로 늘어선 고층 아파트가 바람을 완벽하게 가로막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는 여름철 체감 온도 상승뿐 아니라 겨울철 공기 정체, 봄철 미세먼지 고농도 발생까지 연쇄적으로 이어진다.

3. 고층 아파트 단지의 열섬 효과 – 빛과 열이 갇히는 구조
고층 아파트는 대형 유리창과 콘크리트 외벽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구조는 햇빛과 열을 반사하지 않고 오히려 흡수하거나 갇히게 만드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특히 같은 재질의 건물들이 나란히 배열되어 있을 경우, 건물 사이 골목은 햇볕이 들지 않지만 공기의 흐름이 막혀 있어 더운 공기가 빠져나가지 못한다.

이런 구조는 도시의 열섬 현상을 더욱 가중시킨다. 열섬 현상이란 도시 내부가 외곽보다 높은 온도를 유지하는 현상인데, 이는 태양열이 아스팔트, 콘크리트, 유리 등에 축적되고, 야간에도 열을 방출하면서 도시 전체의 평균 기온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고층 아파트 단지는 이러한 현상을 더욱 심화시킨다.

서울시 기후환경본부의 연구에 따르면, 고층 건물이 밀집한 지역은 같은 구 내 녹지 비율이 높은 지역보다 야간 기온이 평균 2.4도 더 높았다. 그 이유는 단순히 ‘건물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 배치와 재질, 높이 등이 복합적으로 바람을 막고, 열을 가두는 구조를 만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에어컨 실외기가 다량으로 작동하는 저녁 시간에는, 더위가 인위적으로 배출되면서 이중적인 열원 역할을 하게 된다.

4. 해결책은 열린 구조 – 도시 설계에 바람을 넣어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도시 설계에 ‘바람’을 넣는 개념적 전환이 필요하다. 건물 하나를 짓는 것이 아닌, 도시 전체의 구조를 바람이 통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고층 건물의 배치 방식 개선이다. 모든 건물을 동일한 방향으로 세우기보다는, 바람의 흐름을 고려하여 틈을 두고 비스듬히 배치하면 바람길을 확보할 수 있다.

또한 저층 녹지 공간 확보, 도심 공원 조성, 하천 복원 등도 중요하다. 이러한 요소들은 도시의 온도를 낮추는 동시에, 바람이 흐를 수 있는 자연형 통로를 제공한다. 서울시는 최근 '바람길숲 프로젝트'를 추진하여 도시 곳곳에 고층 건물 사이를 관통하는 바람길을 만들고 있다. 그러나 아직 민간 아파트 단지, 대형 개발지구에는 적용이 미흡하다.

건축물 자체에도 바람 순환을 유도하는 설계가 필요하다. 일부 해외 사례처럼 건물 하부를 개방해 통풍 통로로 사용하거나, 옥상과 벽면 녹화를 통해 열 흡수를 줄이는 방식이 있다.
도시는 더 이상 밀도와 수익만으로 설계되어선 안 된다.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기후, 건강한 환경을 고려한 설계가 도시 생존의 핵심 요소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