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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더운 날 공기가 탁한 이유? 열섬현상과 대기오염의 관계

1. 열섬현상이 도시를 뜨겁게 만들며 시작되는 악순환
여름철, 유난히 더운 날일수록 도시의 공기는 유독 무겁고 탁하게 느껴진다. 이 현상의 배경에는 **열섬현상(urban heat island)**이 있다.
열섬현상은 도시가 주변 지역보다 높은 온도를 유지하는 기후 이상 현상으로, 주로 아스팔트, 콘크리트, 유리 등 인공 구조물이 태양열을 흡수하고 축적한 후, 밤에도 천천히 열을 방출하며 발생한다.

자연 상태의 토양이나 초목은 수분 증발을 통해 열을 흡수해 온도를 낮추는 역할을 하지만, 도시의 대부분은 이 기능을 하지 못한다.
특히 고층 건물이 밀집된 지역에서는 햇볕을 직접 받는 면적이 넓고, 복사열이 주변 건물에 반사되며 열이 갇히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도심 기온이 인근 녹지 지역보다 평균 2~5도까지 높아지는 현상이 관측된다.

더운 날 도시 기온이 유난히 높게 유지되는 이유는 단순히 태양이 뜨거워서가 아니라,
도시가 자체적으로 열을 만들어내고, 열을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축적된 열은 단순히 ‘더위’로 끝나지 않고, 대기오염과 직결되는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낸다.

더운 날 공기가 탁한 이유? 열섬현상과 대기오염의 관계



2. 뜨거운 공기, 정체된 대기 – 오염 물질이 떠나지 못하는 도시
열섬현상은 공기의 흐름을 방해하며 도시의 ‘대기 정체’를 유도한다.
뜨거운 지표면은 상승 기류를 만들어야 정상적이지만, 열섬이 만든 복사열은 공기를 수직으로 상승시키지 못하고 도시 상공에 얇은 뚜껑처럼 ‘온난층’을 형성한다.
이로 인해 대기 중 오염 물질은 쌓이기만 하고 흩어지지 않는 정체 상태에 빠진다.

이때 발생하는 대표적 문제가 바로 **오존과 초미세먼지(PM2.5)**의 농도 상승이다.
햇볕이 강할수록 자동차와 공장에서 배출된 질소산화물(NOx)과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이 광화학 반응을 일으켜 지표면 오존을 만들어낸다.
오존은 상층에서 태양 자외선을 막는 기능을 하지만, 지표면에서는 호흡기 자극을 유발하는 유해 기체다.
그리고 열섬으로 인해 오존이 흩어지지 않고 정체되며, 이로 인해 여름철 대기질은 급격히 악화된다.

실제로 서울시 환경공단 자료에 따르면, 2023년 7월과 8월의 오존주의보 발령 건수는 평년 대비 1.8배 증가했다.
이때 대부분의 발령 시간은 낮 최고기온이 33도를 넘긴 오후 2시~5시 사이에 집중되었다.
즉, 더운 날 공기가 탁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열로 인해 오염이 발생하고, 그 오염이 빠져나가지 못해 정체되기 때문이다.

3. 대류현상이 억제되는 도시 – 바람 없는 구조가 만든 탁한 하늘
도시의 고온화는 자연스러운 대류현상(공기의 순환)을 방해한다.
자연환경에서는 태양열에 의해 가열된 공기가 상승하고, 그 자리에 주변의 찬 공기가 들어오면서 순환이 일어난다.
이 흐름은 오염물질을 희석하고 흩어지게 하는 중요한 작용을 한다.
하지만 열섬이 극심한 도시에서는 이러한 대류가 수직 흐름 없이 평면에 정체되는 특성을 가진다.

게다가 고층 아파트, 빌딩, 쇼핑몰 등 인공 구조물이 바람길을 막으면서 수평 흐름조차 차단된다.
이로 인해 도심의 공기층은 마치 뚜껑이 덮인 냄비처럼 갇혀버리고, 미세먼지, 질소산화물, 오존, 이산화탄소 등이 한 곳에 쌓이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더운 날에 창밖이 뿌옇게 보이거나, 코를 찌르는 듯한 자극이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국립환경과학원의 분석에 따르면, 열섬 현상이 심한 지역일수록 미세먼지와 오존 동시 고농도 발생 비율이 2배 이상 높았으며,
특히 고온·무풍 조건에서는 오염물질 확산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고 경고하고 있다.

결국 더운 날 도시의 공기가 탁한 이유는, 단순히 ‘더운 기온 때문’이 아니라 더울수록 오염물질이 쌓이고, 도시가 그것을 풀어줄 바람조차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4. 열섬을 줄이면 공기질도 좋아진다 – 해법은 도심 기온 완화
대기오염 문제를 단지 자동차 배출가스나 공장 배출물로만 접근하면 근본 해결이 어렵다.
왜냐하면 오염물질이 발생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 오염이 ‘머무는 환경’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시 공기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열섬 현상을 줄이는 기온 관리 정책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첫 번째 해법은 도심 녹지 확대다. 나무와 초목은 온도를 낮추는 동시에, 공기 중의 미세먼지와 오존을 흡수·분해하는 역할을 한다.
서울시는 2024년부터 ‘도시 바람길 숲’ 프로젝트를 통해 주요 도심에 바람이 통하는 녹지 회랑을 만들고,
지면 온도를 최대 2도 낮추는 효과를 보고 있다. 바람길이 확보되면 자연스럽게 공기 흐름이 생기고, 오염물질의 체류 시간도 줄어든다.

두 번째는 투수성 포장재 및 쿨루프(cool roof) 기술 도입이다.
열을 반사하거나 지면의 열 축적을 줄이는 설계는 도시의 복사열을 억제하는 데 효과적이다.
또한 도시 바람길 설계와 고층 건물 배치 기준의 재정비도 필요하다.
공기 흐름이 막히지 않도록 건물 간격을 확보하고, **열이 정체되지 않도록 설계하는 ‘기후형 도시계획’**이 필수적이다.

즉, 더운 날 공기를 탁하게 만드는 근본 원인을 해결하려면, 도시의 열을 낮추고 바람을 흐르게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오존주의보 없는 도시, 숨 쉬기 편한 여름을 만드는 유일한 길이다.


열섬현상은 기온뿐 아니라 대기오염까지 유발한다. 더운 날 공기가 탁한 진짜 이유는, 열이 오염을 머무르게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