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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고층 아파트 옆이 더운 이유, 바람이 막혔다!

1. 도시 바람길을 끊은 구조
고층 아파트 옆이 더운 이유는 단순히 건물에서 나오는 열 때문만이 아니다. 이 열기는 도시의 바람 흐름이 차단되면서 더 크게 증폭된다. 바람은 자연의 냉방 장치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도시의 고층 아파트 단지는 이 바람의 통로를 막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과거에는 바람이 산과 강을 타고 도심까지 자연스럽게 흘렀지만, 최근 20~30년 사이 급격히 늘어난 고층 아파트는 이 흐름을 물리적으로 차단했다. 높이가 30층이 넘는 건물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은 바람이 직진하지 못하고 위로 솟구치거나, 아예 방향을 바꾸게 된다. 그 결과, 고층 아파트 옆 지역은 바람이 잘 통하지 않는 ‘무풍지대’로 바뀌는 경우가 많다.

바람이 통하지 않으면 열이 갇힌다. 태양이 지면에 내리쬔 열은 시간이 지나도 빠져나가지 못하고, 고온 상태가 지속된다. 이로 인해 고층 아파트 단지 주변은 체감 온도가 기온보다 3~5도 높은 상태로 유지된다. 여기에 차량과 에어컨 실외기에서 나오는 인공 열까지 더해지면, 사람이 살기 힘든 ‘열의 골목’이 탄생하는 것이다.

2. 도시계획이 만든 열섬 현상
바람이 막혔다는 것은 단지 불쾌한 현상이 아니라, 도시 전체의 열기 순환을 망가뜨린 결정적 요인이다. 고층 아파트는 건물 자체가 열을 흡수하고 저장하는 동시에, 주변 공기의 흐름을 막음으로써 열섬 현상을 강화시킨다.

도시 열섬(Urban Heat Island)은 도시 기온이 주변 지역보다 지속적으로 높게 유지되는 현상이다. 이 열섬은 대체로 콘크리트, 아스팔트, 유리로 된 대형 구조물이 햇빛을 반사하지 못하고 흡수함으로써 발생한다. 고층 아파트는 이 모든 특성을 갖춘 대표적인 열 저장 구조다.

특히 바람이 없는 구조는 야간에도 열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만든다. 자연적으로 열이 식어야 하는 밤 시간에도 도시 한복판은 더운 상태로 유지되며, 밤낮의 온도 차가 줄어든다. 이로 인해 냉방 수요가 증가하고, 에너지 소비도 급증하게 된다.

즉, 바람이 막혔다는 건 단지 사람의 불편이 아니라, 도시가 자체적으로 식지 못하는 구조를 가진 것을 의미한다. 고층 아파트가 일렬로 배치된 도시 구조는 그 자체가 기후 문제의 시작점이 되는 셈이다.

3. 체감 온도와 불평등의 시작
고층 아파트 옆이 더운 이유는 단순한 물리적 환경을 넘어서 주거 불평등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고층 아파트는 대개 중산층 이상이 거주하는 공간이지만, 그 옆에는 저층 주택, 상가, 임대주택, 열악한 골목이 자리 잡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바람이 통하지 않는 구조의 피해를 직접적으로 받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많은 도시는 대단지 고층 아파트를 지을 때 주변 저층 지역에 대한 바람 흐름, 체감 온도, 소음 반사, 조망권 등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는다. 그 결과, 고층 아파트 바로 옆 지역은 사각지대가 되고,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더위뿐만 아니라 환기 부족, 실내 공기질 저하 등의 이중고를 겪는다.

폭염일수와 열대야일 수가 늘어나면서 이러한 ‘무풍 지역’에서의 삶은 더욱 위태로워지고 있다. 바람이 막힌 공간은 단순히 불쾌한 생활공간이 아니라, 건강과 생존을 위협하는 기후 약자 지역이 되고 있는 것이다.

즉, 고층 아파트 옆이 더운 이유는 환경 설계의 실패이자, 사회적 약자가 떠안는 기후 불평등의 단면이다.

4. 도시 설계가 바뀌어야 할 이유
이제 우리는 왜 고층 아파트 옆이 더운지, 왜 바람이 막혔는지를 충분히 이해했다. 다음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정답은 도시 설계의 전면적인 개편에 있다.

첫째, 도시 설계 시 바람길(Wind Corridor)을 고려해야 한다. 산과 하천, 공원 등에서 발생하는 바람이 도심까지 닿을 수 있도록, 건물의 배치와 간격,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일본과 유럽은 이미 도시 설계 지침에 ‘바람길 확보’를 포함하고 있다.

둘째, 고층 아파트 단지 주변에는 반드시 열 완충 녹지나 공공 쉼터를 조성해야 한다. 고온이 집중되는 지역에 나무를 심고, 물이 스며드는 투수성 포장재를 깔아 기온을 낮추는 그린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셋째, 아파트 개발 인허가 과정에서 기후 영향 평가(Climate Impact Assessment)를 의무화해야 한다. 이 평가를 통해 주변 지역의 기온 변화, 바람 차단 정도, 열섬 기여도를 수치화하고, 이에 맞춘 대응 계획이 마련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바람이 막힌 지역에 대한 우선순위 냉방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 폭염에 취약한 구역에 쿨링센터, 무더위 쉼터, 그늘막, 미스트 분사기 등 공공 냉방시설을 집중 설치해야 한다.

바람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공공재다. 하지만 지금 도시는 그 흐름마저 차단한 채 성장만을 추구해 왔다. 고층 아파트 옆이 더운 이유는 단지 기온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도시가 인간보다 건물을 먼저 생각한 결과다.

고층 아파트 옆이 더운 이유는 바람이 막혔기 때문이다. 도시 설계가 만든 기온 불균형과 그 해결책을 살펴본다.

고층 아파트 옆이 더운 이유, 바람이 막혔다
고층 아파트 옆이 더운 이유, 바람이 막혔다